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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의 탄생

비트코인은 어느 날 갑자기 출처도 모르게 나타난 물건이 아닙니다. 2008년 금융위기 시기에 공개된 아홉 쪽짜리 문서에서 시작해, 2009년 첫 블록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탄생 배경을 알면 비트코인의 설계에 담긴 선택을 당시의 고민과 나란히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어떤 시대에 태어났다는 사실이 그 설계가 옳다는 결론을 대신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배경은 판단의 재료이지 결론 자체는 아닙니다.

금융위기와 새로운 문제의식

2008년 가을, 이름난 투자은행이 무너지고 각국 정부가 은행을 살리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습니다. 은행에 맡겨 둔 돈을 포함해 기존 금융 체계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실감한 시기였습니다.

비트코인 백서가 공개된 시점과 이러한 금융위기의 배경은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그래서 은행 같은 중개 기관 없이 개인끼리 돈을 주고받는 시스템이라는 문제의식을 당시 상황과 연결해 읽을 수 있습니다. 비트코인의 발행량을 2,100만 개로 묶어 둔 설계도 이러한 시대적 고민과 나란히 살펴볼 수 있지만, 금융위기가 그 선택이나 개발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아홉 쪽짜리 백서

2008년 가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이름의 인물이 암호학 연구자들의 메일링 리스트에 아홉 쪽짜리 문서를 올렸습니다. 제목은 우리말로 옮기면 ‘비트코인: 개인 대 개인 전자 현금 시스템’에 해당합니다.

이 문서는 은행 같은 중개 기관 없이 개인과 개인이 직접 돈을 주고받게 하는 설계도였습니다. 당시 인터넷으로 돈을 보내는 일 자체는 가능했지만, 카드사나 은행 같은 기관이 가운데에서 거래를 처리하고 장부를 관리해야 했습니다. 백서는 이러한 중개자 없이 전자 현금을 구현하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제네시스 블록

문서가 공개된 뒤 약 두 달이 지난 2009년 1월, 사토시 나카모토가 소프트웨어를 실제로 실행해 첫 블록을 만들었습니다. 이 블록을 제네시스 블록이라고 부릅니다. 비트코인 전체장부의 맨 앞에 놓인 첫 기록입니다.

제네시스 블록에는 그날 영국 신문 《더 타임스》의 일면 헤드라인이 담겼습니다. 내용은 재무장관이 은행에 두 번째 구제금융을 앞두고 있다는 기사였습니다.

신문 발행일보다 먼저 신문을 들고 찍은 사진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 사진은 적어도 신문이 발행된 뒤에 찍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제네시스 블록에 새겨진 헤드라인도 비슷하게 첫 블록이 해당 신문보다 나중에 만들어졌다는 기록을 남깁니다.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공적 자금이 투입되던 시기에, 은행을 거치지 않는 돈이 첫 기록을 남겼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이것이 만든 사람의 의도였는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두 사실이 한 블록 안에 함께 기록되어 있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 블록에서 이어진 기록

제네시스 블록 위로 새로운 블록이 계속 쌓였습니다. 블록은 평균적으로 약 10분에 하나꼴로 만들어지고, 이렇게 이어진 기록은 전 세계가 함께 쓰는 전체장부를 구성합니다.

채택된 체인의 기록은 뒤에 블록이 쌓일수록 변경하기 어려워집니다. 다만 최근 블록은 체인 재구성 과정에서 채택된 체인에서 제외될 수 있으므로, 모든 블록이 어떤 경우에도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 더 많은 블록이 쌓일수록 기록을 바꾸려면 뒤따르는 작업을 다시 수행해야 하므로 변경의 부담이 커집니다.

따라서 2009년 첫 블록부터 이어지는 역사를 누구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아홉 쪽짜리 문서와 첫날의 코드, 제네시스 블록도 공개된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람은 가려져도 기록은 남습니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본명인지, 한 사람의 이름인지 여러 사람의 이름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만든 사람의 정체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지만, 비트코인의 탄생 과정 자체가 공개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별개입니다.

따라서 비트코인의 역사를 이해할 때는 인물을 미화하거나 정체에 대한 추측을 사실처럼 받아들이기보다 문서와 코드, 첫 블록 같은 기록을 확인하는 편이 중요합니다.

기존 금융에도 그 나름의 이유와 안전장치가 있으며, 비트코인의 설계에도 아직 답하지 못한 물음이 남아 있습니다. 비트코인이 금융위기 시기에 공개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설계가 옳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시대의 문제의식과 공개된 탄생 기록은 비트코인이 왜 그런 구조를 선택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출발점입니다.

관련 내용은 비트코인 백서에서 이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린 앨든이 연결하는 화폐사와 기술의 계보

린 앨든은 2022년 글 What is Money, Anyway?에서 비트코인의 등장을 화폐의 부채 관계와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연결합니다. 「돈이란 무엇인가」 시리즈의 이 관점은 공개된 탄생 기록을 해석하는 하나의 출발점입니다.

앨든은 기관의 지급 의무인 통화와, 다른 기관의 부채가 아닌 자산을 구분합니다. 예금이나 준비금은 평소에 돈처럼 쓰이지만 지급이 중단되거나 동결되면 접근할 수 없을 수 있습니다. 직접 보관한 금에는 발행자의 상환 의무가 없지만 도난·압수·거래 상대방과 가격의 위험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법정화폐의 유연한 공급이 금융위기에 유동성을 제공하고 단기 변동을 조절하는 수단이 된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동시에 구매력 하락과 선택적인 구제금융, 시민이 파악하기 어려운 재정 비용을 비판합니다. 이것은 제도의 편익과 비용에 관한 앨든의 평가이며, 비트코인의 탄생 배경을 곧바로 그 가치의 증명으로 삼는 설명은 아닙니다.

인터넷 결제와 사생활 보호라는 두 관심

1980~1990년대 인터넷과 암호 기술이 발전하면서 온라인에서 사용할 돈을 연구하는 시도가 이어졌습니다. 해시캐시(Hashcash), 비트골드(bit gold), 비머니(b-money)는 비트코인 이전의 문제의식과 기술을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각각의 목적과 구현 여부는 달랐으므로 모두 완성된 통화였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한쪽에는 인터넷 결제를 편리하게 만들려는 관심이 있었습니다. 다른 쪽에는 암호 기술로 사생활을 보호하려는 사이퍼펑크의 관심이 있었습니다. 앨든은 디지털화가 통신과 거래를 편리하게 만드는 동시에 감시와 접근 통제를 확대할 수 있다는 우려를 연결합니다.

그가 인용하는 프리덤하우스의 과거 자유도 자료와 하이에크의 화폐관도 이 해석의 배경입니다. 다만 2009년 이후의 사건과 지표는 사토시가 개발을 시작한 원인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저자가 나중에 비트코인을 평가한 맥락과 당시의 개발 기록을 구분해야 합니다.

중앙의 중단 지점을 줄이는 설계

사토시는 신뢰할 수 있는 제삼자 없이 개인끼리 전자 현금을 주고받는 체제를 설명했습니다. 중앙 서버에 의존하는 네트워크와 여러 참여자가 직접 연결되는 네트워크를 대비한 그의 글은 단일한 중단 지점을 줄이려는 관심을 보여 줍니다.

비트코인 참여자는 전체장부와 규칙에 맞는 거래를 검증합니다. 블록은 평균 약 10분 간격으로 만들어지지만, 모든 참여자가 정해진 시각에 동시에 표결하는 방식은 아닙니다. 개인키를 직접 관리하면 수탁 기관의 상환 약속에 의존하지 않고 거래에 서명할 수 있습니다. 거래 기록은 장부에 있으며 개인키를 보관하는 기기 안에 비트코인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금융위기의 시점, 앞선 기술 연구, 중개자 의존을 줄이려는 설계는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네시스 블록의 신문 문구만으로 사토시의 모든 의도를 확정하거나, 그 이후의 정치적 사건을 개발의 직접 원인으로 되돌려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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