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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풀노드가 좀비노드일까?

예전에 블로그에 올라왔던 질문의 답변을 옮겨왔습니다.

(질문)

어떤 분이 풀노드를 왜 돌려야 하는지 제대로 모르면서 돌리면 좀비노드가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노드를 어떻게 운영되는지 자세히 알아야 한다고 하면서요. 이 말에 동의하시나요?

 

(답변)

동의, 비동의 2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비동의입니다. 그러나 저렇게 주장하는 것에도 분명 의미가 있기 때문에 결론은 비동의이지만 생각해 볼 만한 것들은 있습니다. 아래는 저의 구구절절 생각을 정리할 것입니다. 글이 좀 길어 질 수 있으니 양해해 주세요.

비트코인은 오픈 금융 네트워크

비트코인은 오픈 금융 네트워크입니다. 오픈되어 있기 때문에 네트워크가 동작하기 위한 기본적인 약속(프로토콜)만 지키면 그 위에 무엇을 하든 자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디널스도 나오는 것이고, 믹싱과 같은 서비스도 나올 수 있었습니다. 탭루트 업그레이드를 위해 커뮤니티의 동의를 받아 업그레이드가 되었던 것도 오픈 네트워크라고 가능한 것이고, 이후 라이트닝 네트워크가 발전하고, 계속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누구가 자유롭게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됩니다. 풀노드 패키지를 무엇을 사용하든, 옵션을 무엇을 설정하든 그것을 개인의 자유입니다. 풀노드를 돌리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풀노드를 굳이 돌리지 않는다고 해서 비트코인 네트워크가 취약해지거나 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아주 초창기에는 네트워크의 생태계가 커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서라도 풀노드를 돌리는 사람이 있었겠죠.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 내가 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트코인의 네트워크 파워가 약해질 일은 없으니까요. 그냥 하고 싶은대로 하면 됩니다.

비트코인은 돈

비트코인은 돈입니다. 비트코인은 매우 신기하게도 가지고만 있어도 세상의 변화에 동참할 수 있는 신기한 돈입니다. 비트코인은 돈이자 무브먼트입니다. 비트코인을 돈으로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무제한 발행 가능한 피앗 시스템에 대응하는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비트코인은 레지스탕스의 돈이라고 표현합니다. 비트코인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피앗에 저항하는, 제국군에 맞서는 저항군이 되는 셈입니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비트코인을 어느 공간에 보관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CeFi에 두어도 되고, 거래소에 두어도 되고, EFT로 두어도 되고, 콜드스토리지에 셀프 커스터디해도 됩니다. 일단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피앗 시스템에 저항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콜드스토리지에 셀프 커스터디 하는 것 이외에는 언제든지 남의 손에 뺐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만 하면 됩니다. '내 비트코인은 다른 사람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지고 가도 된다'라고 생각하면 셀프 커스터디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보관하면 되죠. 따라서 자기 돈 소중하다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셀프 커스터디를 안할 이유가 없습니다. 선택은 본인의 몫이죠.

비트코인은 돈일뿐...

비트코인이라고 하는 오픈 네트워크를 알게 되었고, 비트코인이라고 하는 돈을 알게 되었다면 자연스럽게 셀프 커스터디까지 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위 2가지를 이해했는데, 거래소에 두겠다, 현물을 살 수 있는데 굳이 EFT를 사겠다라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그 사람의 판단을 존중하는 수밖에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또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기 때문에 저는 그러려니 합니다.

여기서 저는 적어도 '조롱'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존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조롱은 기본적으로 내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이 깔려 있습니다. 내가 비트코인을 이해했다고 해서 모르는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비트코인을 공부하고, 다양하게 경험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더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먼저 이해한 것이고, 먼저 경험한 것 뿐입니다. 그래서 전 '조롱'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사람만의 인생이 있는데 비트코인이 뭐라고 제가 남을 조롱하겠습니까.

안타까움은 있습니다. 왜 저기까지 밖에 생각하지 못할까, 왜 한 발자국 더 나가가지 못할까라는 안타까운 심정은 있습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비트코인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해서 조롱당하고, 멸시받을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그 사람의 인생을 제가 책임질 것도 아니므로 제가 책임져야 하는 사람에게 더 집중합니다. 가족이죠.

오히려 이렇게 뻘글을 쓰면서 저의 생각과 관점을 정리하고, 이러한 글을 보면서 더 이해의 폭이 넓어지기를 기원할 뿐입니다. 가족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는 슬쩍 알려주는 것이 전부이고, 적극적으로 권장하지 않습니다. 비트코인이 뭐라고 제 생각을 주입하겠습니까. 돈은 돈일 뿐, 돈 이상의 역할을 하면 안되니까요.

풀노드와 비트코인

풀노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비트코인을 이해하고, 셀프커스터디를 결심하는 것까지도 매우 험난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비트코인의 속성을 이해하면 풀노드에 관심이 자연스럽게 가기 마련입니다. 검열저항성이라는 개념이 이해되면, 그것을 확보하고 싶잖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풀노드가 필요하기 때문에 풀노드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풀노드를 돌리고, 지갑에 연결해서 에어갭 트랜잭션 날려보고. 정말 짜릿한 순간들입니다.

저도 처음 풀노드 구축에 성공하고 동기화 되는 모습을 보면서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일원' '저항군에 가입'한 것처럼 매우 흥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웬지 멋져보였고, 스스로 대단해 보였습니다. 그렇게 풀노드를 만들어주는 패키지를 여럿 경험하면서 풀노드를 대신 만들어 드리는 것까지 하게된 것이죠.

저는 그냥 풀노드를 돌려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분이 이야기한 '좀비노드'가 되면 어떻습니까. 내가 비트코인을 이해했고, 풀노드에 관심이 생겨서 돌리고 싶다는데 그게 좀비노드가 되었든 안좀비노드가 되었든 무슨 상관일까요. 비트코인에 심취해 있는 사람들은 약간 강하게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래서 아마도 '좀비노드'라는 표현을 쓴 것 같습니다. 내가 내 돈 내고 운영하는 것이 좀비면 어떻습니까. 다 자기 좋자고 하는 것인데 남이 뭐라고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잘 모르고 운영하면 좀비노드된다는 이야기에 비동의 하는 것입니다.

비트코인의 모든 매커니즘을 다 이해하면서 셀프 커스터디하고 풀노드 돌려야 한다면 세상에 몇 명이나 비트코인으로 저축하며 구매력을 보존할 수 있겠습니까. 비트코인은 그냥 돈입니다. 셀프 커스터디만으로도 충분한 돈입니다. 남들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 셀프 커스터디를 하는 수준에서도 충분히 저항군이 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신비로운 돈입니다.

하지만 저런 이야기를 한 분의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이왕 비트코인 저항군 세계에 입단을 했으면 제대로 이해하면서 움직이라는 독려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내 돈을 가지고 있겠다는데, 돈을 가지려면 반드시 뭐뭐뭐를 해야한다고 전제를 붙이는 것이 매우 이상하잖아요. 비트코인은 돈이라면서요. 그러면 돈답게 가지고만 있으면 됩니다.

Pruned node라는 속성을 알고 있다면 이미 풀노드를 구축했다는 의미인데, 굳이 풀노드가 아니어도 되고 Pruned node로 돌리면 된다고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왕 할 것 돈 좀 더 써서 SSD 용량만 넉넉하게 하면 풀노드를 돌릴 수 있는데 굳이 설치 후 옵션으로 체크해야 하는 Pruned node로 돌릴 이유가 없습니다.

자기 돈은 자기가 반드시 보유해야 의미가 있으니 Not your keys, not your bitcoin! 를 강조하는 것이고, 이것을 위해 셀프 커스터디를 하는 것이죠.

여기에 한반 자국 더 나가가 스스로 검열저항성을 확보하고 싶으면 풀노드를 돌리면서 지갑에 연결하는 것입니다. 비트코인의 분산장부를 한 벌 더 보유하는 것은 덤이고, 본인의 돈을 지키기 위한 검열저항성을 위해 풀노드를 돌리는 것입니다. inbound 옵션도 켜고 싶으면 켜는 것이고, 그렇지 않아도 나를 위해 풀노드를 돌리는 것이라면 안켜도 됩니다. 누가 강제하고 말고 할 것이 있나 싶습니다.

풀노드를 안돌린다고 내가 보유한 비트코인이 돈으로써 가치가 훼손되는 것도 아니고, 풀노드에 인바운드 허용 옵션을 안켠다고 해서 어리석은 '좀비노드'를 운영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인바운드 허용 옵션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안내하고 방법을 가이드하면 되지 않을까요?

엄브렐 비트코인 코어에서 인바운드 허용 옵션은 클릭한번 하면 해결됩니다. 어차피 토르를 통해 데이터를 주고 받기 때문에 포트포워딩 같은 것을 안해도 됩니다. 포트포워딩도 클리어넷 상황일 때에나 설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 엄브렐과 같이 토르를 기반으로 하는 경우에는 굳이 포트포워딩도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이왕이면...

물론 이왕이면 더 공부해서 비트코인 기술과 비트코인 풀노드의 옵션을 모두 알고 있으면 더 좋겠죠. 아마도 '좀비노드' 이야기한 분도 '맹신하지 말고 스스로 공부해서 제대로 풀노드를 돌려라'라는 이야기를 저렇게 하신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제대로 파고 들어서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피앗 시스템에서 돈이 어떻게 흘러가고, 이자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는지 모른 채 살아왔던 저의 무지몽매한 세월을 비추어 보아도, 제대로 알아야 깨우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비트코인도 여전히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제대로 알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는 동감, 동의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누군가를 조롱하고, 편가르고, 비난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트코인 코어의 옵션 설정이 네트워크에 매우 중요할 때가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UASF를 실행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결정의 순간이 오겠죠. 그때가 되면 저도 글로 쓰기도 할 것이고, 다른 비트코인 유튜버들도 각자의 관점에서 강조를 할 것입니다. 다양한 커뮤니티 채널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판단할 수 있을 정도의 민감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겠죠.

​저의 긴 뻘글도 반드시 베뤼파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