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란 무엇인가
돌과 조개껍질, 소금과 가축, 금속과 종이까지 사람들은 서로 다른 물건을 돈으로 써 왔습니다. 형태는 달라도 오늘 얻은 자원을 나중에 쓰고, 다른 사람의 물건과 교환하려는 필요는 이어졌습니다. 돈을 이해하려면 지금의 지폐와 예금뿐 아니라 무엇이 그 역할을 맡아 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글은 린 앨든이 2022년에 쓴 What is Money, Anyway?를 바탕으로 만든 「돈이란 무엇인가」 시리즈의 출발점입니다. 앨든은 돈의 역사를 저축 수단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읽습니다.
가진 자원을 쓰는 네 가지 방법
앨든은 자원의 쓰임을 소비·저축·투자·나눔으로 구분합니다. 소비는 먹고 살거나 즐기는 데 지금 자원을 쓰는 일입니다. 저축은 나중에 쓸 수 있도록 안전하고 교환하기 쉬운 형태로 보관하는 일입니다. 투자는 자원을 늘릴 가능성을 얻는 대신 잃을 위험을 감수하며 사업이나 교육 등에 투입하는 일입니다. 나눔은 공동체의 다른 사람에게 자원을 내어 주는 일입니다.
그는 저축을 미래 소비를 위한 배터리에, 투자를 자원을 키우려는 증폭기에 비유합니다. 저축은 시간과 거리를 건너 구매력을 옮기는 데 목적이 있고, 투자는 더 큰 결과를 얻기 위해 위험을 부담한다는 차이입니다. 어떤 자산을 배터리라고 부른다고 해서 실제 구매력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통장에 모은 숫자가 그대로여도 살 수 있는 물건이 줄면 저축의 목적은 일부 훼손됩니다. 그래서 얼마를 모았는지뿐 아니라 무엇으로 보관했는지도 중요합니다. 앨든은 극심한 통화 가치 하락을 겪은 사회에서 사람들이 외화나 실물 자산을 더 의식적으로 고른다고 관찰합니다. 자신의 통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도 경험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누구의 부채인지 구분하기
앨든은 설명을 위해 화폐와 통화를 구분합니다. 통화는 은행이나 중앙은행의 부채이면서 교환과 계산에 쓰이는 것이고, 화폐는 금처럼 다른 누군가의 부채가 아닌 자산이라는 구분입니다. 이는 이 글에서 쓰는 분석상의 구분이며, 모든 경제학에서 통용되는 유일한 정의는 아닙니다.
내 예금은 내 자산이면서 은행이 나에게 지급해야 할 부채입니다. 금은 보유자에게 자산이지만 다른 기관이 그 금을 갚아야 하는 구조는 아닙니다. 금 태환이 가능했던 지폐는 일정량의 금을 요구하는 청구권이었습니다. 앨든이 소개하는 J. P. 모건의 1912년 의회 증언도 금 자체와 신용의 차이를 강조하는 사례입니다.
이 구분은 가격이 안정적인지와는 별개입니다. 누구의 부채도 아닌 자산도 시장 가격이 변할 수 있고, 은행의 부채인 예금도 일상 결제에는 편리할 수 있습니다.
상품화폐에서 디지털 형태까지
앨든이 제시하는 큰 흐름은 상품화폐, 금본위제, 법정화폐입니다. 상품화폐는 물건 자체가 돈으로 쓰이는 형태입니다. 금본위제에서는 금과 연결된 지폐가 유통되었고, 법정화폐 체제에서는 지폐를 정해진 양의 금으로 바꿔 주겠다는 약속 없이 통화가 사용됩니다.
이 구분이 각 나라의 역사를 단일한 연표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금본위제의 도입과 중단 시점은 달랐습니다.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는 여러 통화가 달러에, 달러가 금에 연결되는 구조였고, 1971년 미국은 외국 통화 당국에 대한 달러의 금 태환을 중단했습니다. 앨든은 그 이후 달러 체제를 원유 결제와 국제 달러 수요의 관계로 이어서 설명합니다.
그가 2022년에 네 번째 단계로 제시한 것은 디지털 형태의 돈입니다. 비트코인, 민간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는 화면에 숫자로 나타날 수 있지만 발행 주체와 부채 관계, 통제 방식은 다릅니다. 디지털이라는 외형만으로 같은 돈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서로 다른 화폐관으로 읽는 역사
칼 멩거로 대표되는 오스트리아학파는 사람들이 거래하기 좋은 재화를 선택하는 과정에 주목합니다. 현대화폐이론(MMT)은 국가가 세금을 특정 단위로 부과하고 지출하는 구조가 그 통화에 대한 수요를 만든다는 설명을 강조합니다.
앨든은 전자에 가까운 관점에서 후자의 논거도 검토합니다. 이후의 글은 화폐의 조건과 공급 변화, 금과 은의 경쟁, 물가와 준비금, 비트코인과 CBDC로 이어집니다. 각 주장에서는 확인 가능한 제도와 사건, 그것을 해석하는 저자의 관점을 나누어 읽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