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과 화폐의 가치
사람들이 종이와 전산상의 숫자를 받고 물건을 내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거래에 편한 재화를 시장이 골랐다는 설명과, 국가의 과세가 통화 수요를 만든다는 설명은 서로 다른 부분에 주목합니다. 린 앨든은 2022년 글 What is Money, Anyway?에서 후자의 논거도 길게 소개합니다.
국가화폐론이 강조하는 관계
국가화폐론은 영어로 차털리즘(Chartalism)이라고 부릅니다. 국가가 특정 단위로 의무를 부과하고 그 단위의 지급 수단을 받아 주는 관계에 주목합니다. 워런 모슬러 등이 전개한 현대화폐이론(MMT)도 이 설명을 중요하게 다룹니다.
모슬러가 제시하는 사고실험은 정부에 필요한 노동에서 시작합니다. 정부가 군인·경찰·의료 인력·교사를 고용하려면 사람들이 정부가 지급하는 것을 받으려 해야 합니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종이를 나누어 준다고 노동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정부가 그 종이로만 낼 수 있는 세금을 부과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납세 의무가 있는 사람은 그 단위를 구해야 합니다. 정부에 직접 일자리를 구하거나, 정부로부터 돈을 받은 다른 사람에게 물건과 서비스를 팔 수 있습니다. 모슬러는 이렇게 정부의 회계 단위로 보수를 받으려는 구직 수요가 형성된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과세와 통화 수요의 관계를 보여 주는 모형입니다. 세금 이전의 사회에 어떤 의미의 실업도 없었다는 역사적 사실로 일반화해서는 안 됩니다.
명함 한 장에 수요가 생기는 조건
모슬러는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자신의 명함을 예로 듭니다. 방에서 나갈 때 그 명함이 필요하다는 조건을 붙이면 사람들은 명함을 얻기 위해 일을 하거나 이미 가진 사람과 거래하려 합니다. 명함의 재료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반드시 구해야 할 이유가 생긴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국가의 과세권은 통화 수요를 만드는 힘입니다. 그렇다고 과세가 없으면 모든 형태의 돈이 즉시 무가치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상품화폐나 외국 통화처럼 다른 수요를 가진 자산도 존재합니다. 모슬러의 설명이 겨냥하는 것은 자국 법정화폐 체제의 작동 관계입니다.
앨든이 덧붙이는 발행 차익
앨든은 정부가 과세할 수 있다면 금이나 상품을 직접 세금으로 걷지 않고 왜 스스로 발행한 통화를 먼저 지급하는지 묻습니다. 그가 제시하는 답은 시뇨리지, 즉 발행 차익입니다. 발행한 돈으로 얻는 가치와 발행·유통 비용 사이에 차이가 생길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그는 이 구조가 자원을 정부로 이전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반면 MMT의 설명은 정부가 실물 자원과 노동을 어떻게 동원하는지, 지출과 과세가 통화 수요와 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더 초점을 둡니다. 회계적 작동을 설명하는 일과 그 제도를 바람직하다고 평가하는 일은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강제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정부가 세금을 걷을 힘이 있어도 통화의 구매력을 무조건 지킬 수는 없습니다. 경제가 필요한 물건을 공급하지 못하거나 통화에 대한 신뢰가 크게 약해지면 사람들은 다른 통화나 자산을 찾습니다. 금지 조치가 있다고 해서 이런 수요가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앨든은 안정적으로 관리되는 법정화폐와 심한 가치 하락을 겪는 통화를 구별합니다. 세금·지출·중앙은행 운영은 단기 변동을 조절할 수 있지만, 완만한 물가 상승이 지속되면 같은 명목 금액의 구매력은 장기적으로 줄어듭니다. 어느 통화가 얼마를 잃었는지는 기간과 비교 대상을 정해 별도로 계산해야 합니다.
시장 발생설은 사람들이 무엇을 받아들이는지에서, 국가화폐론은 국가가 어떤 의무와 지급 수단을 정하는지에서 출발합니다. 앨든은 전자에 더 가깝지만 후자의 설명을 통해 현대 통화의 제도적 수요를 짚습니다. 실제 돈을 이해할 때는 두 설명이 각각 무엇을 설명하고 무엇을 설명하지 못하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