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 스톤과 화폐 공급
야프섬의 큰 돌 화폐는 거래가 이루어져도 제자리에 남아 있었습니다. 움직인 것은 돌이 아니라 사람들이 기억하는 소유권이었습니다. 린 앨든은 이 사례와 서아프리카의 구슬을 통해 돈의 역할이 재료 자체뿐 아니라 공동체의 기록과 생산의 어려움에 달려 있음을 설명합니다. 이 글은 그의 2022년 글 What is Money, Anyway?를 바탕으로 합니다.
돌을 옮기지 않고 소유권을 바꾸다
라이 스톤은 가운데 구멍이 있는 둥근 돌입니다. 작은 것부터 지름이 3미터를 넘는 큰 것까지 있었습니다. 재료인 석회암을 얻으려면 야프섬에서 약 400킬로미터 떨어진 팔라우로 가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석판을 캐고 나무배로 싣고 돌아오는 과정에는 큰 노력과 위험이 따랐습니다.
큰 돌을 섬으로 가져온 뒤에는 거래할 때마다 운반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돌이 누구 것인지 공동체가 기억했고, 주인이 바뀌면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앨든은 이를 구전으로 공유되는 장부에 비유합니다. 작은 공동체에서는 소유권을 함께 기억하는 방식으로 거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수 세기에 걸쳐 쌓인 돌은 많았지만 새 돌을 가져오기는 어려웠습니다. 기존 재고를 연간 신규 공급으로 나눈 스톡 투 플로우가 높게 유지될 수 있는 조건입니다. 앨든은 돌의 다른 용도보다 이 생산 제약과 공동체의 기록을 화폐 기능의 중요한 근거로 봅니다. 오스트리아학파의 사이프딘 아모스와 MMT의 워런 모슬러가 모두 이 사례를 다루지만 강조하는 지점은 다릅니다.
생산 비용이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앨든이 소개하는 19세기 후반의 오키프는 더 나은 배와 도구로 돌을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기존 주민보다 적은 비용으로 돌을 공급하고 그 대가로 노동과 코코넛 생산물을 얻었습니다. 같은 모양의 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노력이 사람마다 달라진 것입니다.
신규 공급이 늘면 기존의 희소성은 달라집니다. 주민들은 오래된 돌과 새로 들어온 돌을 다르게 평가하며 대응했습니다. 손으로 캐낸 흔적과 유래를 따져 이전 돌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재료만으로 화폐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식민 통치기의 통제도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앨든은 독일 통치자가 돌에 검은 표식을 남겨 몰수를 알리고 노동 제공을 요구한 사례를 소개합니다. 돌을 직접 옮기지 않아도 공동체가 인정하는 소유권을 통제하면 재산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사건은 생산량 변화와 소유권 통제가 서로 다른 경로로 작동함을 보여 줍니다.
서아프리카의 구슬
서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산호·호박·유리로 만든 구슬이 교환 수단으로 쓰였습니다. 앨든은 14세기 여행가 이븐 바투타의 기록을 인용해 소금과 유리 장신구가 거래에 쓰였음을 설명합니다. 몸에 걸칠 수 있는 구슬은 운반하기 편했고, 당시 지역의 기술로 아름다운 구슬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반면 유리 제조 기술을 가진 유럽인은 구슬을 상대적으로 값싸게 대량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만든 구슬은 상품을 사들이는 데 쓰였고 노예무역에도 이용되었습니다. 앨든은 생산 기술의 격차를 통해 한 사회의 자원과 노동이 이전된 사례로 해석합니다.
두 사례의 공통점은 희소성이 물건에 영원히 붙어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이전에는 어려웠던 생산이 쉬워지면 돈의 공급 조건도 바뀝니다. 돈을 저축 수단으로 평가할 때는 지금 얼마나 있는지와 함께 누가 어떤 비용으로 더 만들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